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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홍마오청(Fort San Domingo), 신베이, 대만

by 뚜벅이C 2022. 7. 9.

 

2019년 09월 15일

 

단수이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홍마오청이었다.

 

 


 

홍마오청, 紅毛城, Fort San Domingo

 

1628년 단수이를 침략한 스페인이 산꼭대기에 건물을 세우고 산 도밍고 요새라고 불렀다.

1642년부터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몰아내고 이곳을 지배하는데

스페인이 철수하기 전에 성을 파괴해 네덜란드는 근처에 안토니오 성을 새로 쌓았다.

 

당시 주민들은 네덜란드인들을 붉은 털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홍모인'으로 불렀고

성은 동인도회사 총독이 사는 성이라고 해서 '홍마오청'이라고 불렀다.

 

명나라 시기에는 곡식 저장창고로 사용하기도 했고

청나라 때는 4개의 성문을 증설하는 등 홍마오청을 보수하기도 했다.

 

아편전쟁 후 청나라가 영사재판권을 인정하고 영국과 영구적 임대 계약을 맺으면서

홍마오청은 영국 영사관이 인수하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일본이 점령했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이 다시 돌아왔다.

1972년 영국 영사관이 철수하면서 호주와 미국에 차례로 대리 관리를 위임했으나 모두 중국과 단교하였고

정부의 노력으로 1980년에 이르러 비로소 대만 정부 소유가 되었다.

 

공식명칭은 신베이시립 단수이고적박물관이며, 1급 국가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입장료는 80대만달러.

 

 

손등에 도장을 찍어준다.

 

 

잔디밭에는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계단을 좀 올라가야 한다.

 

 

땀 뻘뻘 흘리며 올라오니 건물 맞은편에 근위병 곰돌이가 보인다.

 

 

단수이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서

요새 역할을 했던 시절에는 감시하기도 좋았을 것 같고 방어에도 굉장히 유리했을 것 같다.

 

 

이곳에는 홍마오청과 영국 영사관저로 쓰인 건물 이렇게 두 채의 건물이 있다.

 

홍마오청 본채
건물 앞에 9개의 국기가 세워져 있다.

 

 

홍마오청을 소유했던 국가(혹은 정권)들을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것이다.

 

내부에는 금고, 열쇠함, 문서 소각로 등 영국인이 남겨놓은 물건들이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 붉은 외벽은 영국이 칠한 것이고

네덜란드가 처음에 건설한 홍마오청은 사실 회백색이었다고 한다.

 

본채를 구경하고 나오면 영국 영사관 건물이 보인다.

 

 

영국 영사관저

앞서 본 건물보다는 이 건물의 모습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붉은색 벽돌, 아치형 기둥, 도자기 꽃병 난간 등 다양한 특징이 어우러진 건물이다.

본채와 영사관저 사이의 넓은 잔디밭은 테니스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1층 회랑은 활 모양 아치, 2층 회랑은 반원형 아치로 되어 있다.

 

 

도자기로 된 난간이 독특하다.

 

 

영사관저 1층 입구.

 

1층에서 거실, 서재, 식당 등을 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이 영사와 가족들의 주거지였기 때문에 당시 영국 스타일로 내부가 꾸며져 있다.

더운 지역인데도 방마다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벽난로를 보면서 고향을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고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식당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든다.

테이블에 찻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서 당시 분위기가 더 생생해지는 것 같다.

 

 

거실

영국이 떠날 때 대부분의 가구를 가져가서

지금 있는 가구와 인테리어는 당시 자료를 참고해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빅토리아 타일이라고도 하는 바닥 타일만 당시 것이다.

 

 

서재

여기는 개인공간이라 거실 같은 공용공간보다는 바닥 타일이 간소한 모습이다.

영국의 주권을 상징하는 마크는 원래 남문과 홍마오청 본채 위에 걸려 있었는데

그것도 영국이 떠날 때 가져갔고 서재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밖에는 영국이 단수이와 다른 지역에서 발견해 수집한 화포들이 있다.

 

 

 

 

건물 한쪽에는 네덜란드 나막신 조형물도 놓여 있었다.

 

 

여러 나라가 거쳐갔지만 영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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